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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떠나는 진주여행] 배영초 빨간벽돌 곁으로 흐르는 옛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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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73회 작성일 13-09-0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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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떠나는 진주 여행
 
제6탄 배영초 빨간벽돌 곁으로 흐르는 옛추억
 
 
 
 
이십 수년이 지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시절 그 노래.
순서로 치자면 가장 최근 졸업한 순서대로 대학교와 고등학교, 중학교 교가가 떠올라야 하지만 신기하게도 국민학교의 교가만이 유일하게 머릿속에 정확히 박혀있었다.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음정하나 그릇됨이 없었다.
 
필자가 졸업한 당시의 배영국민학교(현 교육지원청 자리) 건물을 금번 달 주제로 삼아 보석같은 큰아이와 답사를 준비하며 지금은 신안동으로 옮겨간 모교의 홈페이지를 보는 동안 영사기를 휘감은 필름을 토해내듯 많은 장면들이 찰나와 함께 지나간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표현되는, 예전 국민학교로 불리며 필자의 유년을 길러 준 아날로그적 추억들의 곱씹음. 보석 같은 큰 아이와 그 시절 아빠의 추억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동차 시동을 걸자마자 수안이가 목마르다고 떼를 쓴다.아빠의 등도 벌써 땀으로 젖었다. 기온이 예사롭지 않다. 수안이와의 취재 길은 언제나 비와 바람을 부르더니 오늘은 염천에 놓여진 일요일 속, 아이의 얼굴이 상기되고 연신 차가운 물병에 담긴 노란 빨대만 빨아댄다. 기운처진 수안이를 노동의 댓가는 분명히 팥빙설이라는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전제로 설득하고 불볕 속에 용기내어 아이를 내어 놓는다. 오늘도 잘 부탁한다. 사랑하는 딸(^^)
 
현재 중앙동(예전의 중안동) 진주교육지원청사 자리가 바로 예전 빨간 벽돌집으로 불리었던 배영국민학교의 운동장 터다. 지원청 맞은편엔 작고 사랑스러운 까페와 공방들이 하나둘 들어서 지금은 문화와 예술이 꿈틀거리는 거리 일명 스트릿을 이루었다. 지원청이 들어서기 이전, 통행길인 비봉길은 지금처럼 역동적인 거리가 아니었다. 사실 중앙동 배영국민학교 시대를 끝으로 이 거리도 쇠하여 주거도 상업도 이루어지지 않는 죽은 블록이 되어갔다.
 
진주의 한복판에서 고난의 역사를 견뎌낸 작고 낮은 빨간벽돌집은 이젠 현대화속에 거대해 보이기까지 하는 진주교육지원청의 디지털 그늘 아래 움츠려 자신이 어쩌지도 못하는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배영국민학교 터에는 아직 2개의 건물이 헐리지 않고 남아있다. 빨간 벽돌로 쌓아올린 본관건물과 시멘트로 지어올린 강당만이 이곳이 배영국민학교의 교정이라고 앞을 막고 서있는 찬란한 건물덩어리에 외치고 있는듯하다.
억지스럽고 놀라운 사실은 바로 필자가 눈앞의 빨간벽돌 집을 졸업했다는 것이다.  배영국민학교 담벼락 안에서 공부도 했고 때로는 동무들과 주먹도 겨루고 모래바람 먹으며 열심히 축구하다 목마르면 담벼락 수돗가 꼭지에 주둥이 갖다 대고 무어가 맛나다고 그리도 열심히 수돗물을 들이켰다.
 
필자의 안사람도 배영국민학교 동문이다. 6학년 시절,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악대부 생활도 함께 했었다. 그 때의 연으로 훗날 지금의 안사람과 화촉을 밝혔고 보석같은 아이 셋을 낳아 지금의 가정을 꾸렸다. 참 고마운 교정, 참 그리운 학교다.
 
큰아이 수안이에게
"아빠와 엄마가 어렸을 적 이 빨간벽돌 집에서 처음 만났어. 아빠는 엄마를 좋아했는데 엄마는 다른 남자친구 좋아했었다. 치!!! 질투나게."  아빠와 엄마가 공부했던 학교라는 말에 수안이는 다시금 학교를 바라본다.
배영국민학교의 역사는 100년전으로 올라간다.
1908년 1월, 진주공립심상소학교로 시작해 1945년 6월, 진주배영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1996년 3월 1일자로 진주배영초등학교로 다시 교명이 바뀐다. 참고로 일제 강점기의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다 교육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1995년 8월 11일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학교의 명칭을 변경한다'고 발표하고, 1995년 12월 29일 교육법을 개정하여 1996년 3월 1일부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명칭 변경하였다.
 
그리고 1998년 9월 1일. 필자의 마음이 서운해지는 대목이다.
중앙동 배영초등학교는 이제는 추억속의 빨간 오브제로 이름만 남기고 신안동 배영초등학교로 이전을 했다. 신안동을 지날 때면 노란색 병아리 체육복을 입은 필자의 새까만 자식같은 후배들이 왼쪽 가슴에 배영초등학교의 심볼을 달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시대는 변했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세상이 변했지만 아직 아이들의 눈빛에 긍정과 밝음이 보인다. 이런 것이다.
 
학교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현대적 시설로 더 많은 아이들을 수용하고 많은 졸업생을 내보낸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새로운 것들에 대해 초등학교 역시 변화하고 진화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 아이들에게서 동심과 꿈을 키워주는 것이 초등학교의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아직은 30대이다.
아빠 품에 앉아 팥빙설 한 숟갈에 행복해하는 큰 아이도 곧 초등학생이 된다. 건물은 바뀌고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로서 자라나길 바란다.
 
 
 
 
 
 
[기고/ 조재경 필통 이사]
진주에서 작은 밥집을 운영중이다. 지역사회와 문화예술에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 YWCA와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골목길 아트 페스티발에 한발 살짝 걸치고 있다. 단편영화 '하루' 의 제작총괄 PD이며 '단편영화를 사랑하는 진주사람들'의 주인장이다. 필통의 이사로 재직중이다. 
<아빠와 떠나는 진주 여행>은 아빠와 딸이 함께 진주의 감추어진 명승지나 문화, 역사적 공간을 순례하며 역사공간의 가치와 가족간의 사랑을 동시에 확인시켜 주고자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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