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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기행] 제6편 5.16쿠데타와 제3공화국의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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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95회 작성일 13-09-0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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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16쿠데타와 제3공화국의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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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 떨쳐 일어선 시민, 학생들의 피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회복하였으나 핏자국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일단의 군인들에 의해 민주주의의 싹은 짓밟히고 만다.
 

4.19 혁명이 성공한 지 1년 남짓 지난 1961516, 해병 1여단 소속 군인들이 한강 대교에 나타났다. 해병대는 자신들을 막아선 헌병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다. 반란을 일으킨 군대는 정부 주요 기관과 방송국을 장악한 뒤, 자신들이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쿠데타에 성공한 이들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설치하여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여 전국 구석구석을 감시하고 회유, 협박하는 정보정치를 실시한다. 이어서 반공법을 제정하고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완벽한 통치기제를 완성한다.
 

519, 군인들은 장관, 시장과 도지사를 비롯한 정부 주요 기관의 책임자를 모두 군인으로 대체하고, 군인들이 중심이 된 국가 재건 최고 회의(최고 회의)가 국기 기관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선언하였다. 군사 정부가 출현한 것이다.
 

쿠데타의 주역은 최고 회의 의장을 맡게 된 박정희 소장과, 중앙 정보부를 창설하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될 김종필 중령이었다. 이들은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 반공 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등의 혁명 공약을 내세우며, 북한과의 평화 협상을 주장했던 2,100여 명의 통일 운동 세력들을 체포하였다. 구호·학술·종교 단체를 제외한 모든 정당과 사회 단체를 해산시켰으며, 국회를 해산하고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1,170종의 신문과 잡지도 강제로 폐간시켰다.
 

이어서 혁명재판부와 혁명검찰부를 설치하여 혁명재판을 진행하는데, 여기에서 부정선거관련자, 부정축재자, 반혁명사건, 부패사건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여 범죄자와 함께 반대세력 제거작업에 나선다. 제거 대상에는 과거 유력 정치인과 혁신세력이 모두 해당하며, 쿠데타 주역들 중 자신의 경쟁자가 될 만한 사람들도 포함된다. 쿠데타 주도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 장도영, 김종필, 김형욱 등 14명 가운데 혁명 직후에 반혁명사건 등에 연루되어 숙청된 사람이 절반인 7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박정희의 단면을 보여준다.
 

쿠데타 주역들은 "2년 뒤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에 복귀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박정희도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쿠데타 직후부터 비밀리에 정당(민주 공화당=공화당)을 조직하고, 정치 자금을 모으는 등 권력을 잡을 준비를 하였다.
 

196310월에는 대통령 선거, 11월에는 국회 의원 선거가 있었다. 군복을 벗은 박정희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고, 많은 군인들이 군복을 벗고 국회 의원 후보로 나섰다. 공화당이 오랜 준비를 거쳐 선거를 맞은 것과 달리, 2년 가까이 주요 지도자의 정치 활동을 금지당해 온 다른 정당들은 선거 운동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선거는 공화당의 승리로 끝났고, 박정희는 19631217,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3공화국이 출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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