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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그렇게 아프고 힘들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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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83회 작성일 14-05-2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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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프고 힘들게 살아간다


세상은 깜깜하고 교실은 적막하다.

 

로그함수를 풀며 끙끙대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잔기침 소리, 걸상 끌리는 소리에 젖어 하나 둘 잠이 들고,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은 수도승처럼 고요히 공부를 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입시공부를 강요하고 있는 나는 허리통을 애써 참으며 책을 읽는다. 이 가련한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서글프게도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다.

 

이렇게 고요히 공부하는 아이들도 속으론 울고 있다. 경쟁에 뒤쳐진 아이들만이 아니라 경쟁에 앞선 아이들도 울고 있다.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 돈이 주인인 세상에서 겉으론 웃고 떠들지만 속으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이 삭막한 세상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 부모들은 공부를 강요한다. 어떻게든 남보다 빨리 그리고 많은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설득하고 회유하고 거래한다.

 

세상은 혼탁하고 학교는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학교도 어느새 살아남아야 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운동을 잘해도, 노래 잘하고 춤을 잘 춰도, 청소를 잘하고 친구들을 잘 도와줘도 시험성적이 낮으면 아이들은 설 자리가 없다. 성적이 우수한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살아간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 몇 점의 점수에 울고 웃으며 힘들게 도달한 곳은 어떤 곳일까? 애써 도달한 그곳은 행복할까? 한 그릇의 따뜻한 밥을 먹기 위하여 몇 번이나 자신을 속여야 하는 곳은 아닐까?

 

학교는 지금도 손 내미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작정 공부하라고 강요할 뿐이다. 나도 열여덟 고삼 시절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세상은 온통 텅 비어 있었다. 불안하고 외로워서 고민하고 방황했지만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방황한 만큼 삶을 보는 눈은 깊어졌다. 공부만 죽자 살자 한 대법관 출신 총리 후보는 변호사 개업 5개월에 16억을 벌었다지만, 33년 교사로 살면서 낡고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비에 쫓기며 살아가는 내 소박한 삶이 오히려 즐겁고 행복하다.

 

세상은 우리를 눈치껏 살게 하고 학교는 아이들을 끝없이 감시한다.

 

모범생이든 노는 아이든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학생들은 감시의 대상이 된다. 넥타이를 매었는지, 치마는 무릎 위로 훌쩍 올라가지 않았는지, 머리카락 길이는 적당한지, 휴대폰을 지니고 있지 않는지, 담배는 피우지 않았는지…….

 

나는 스스로 눈치 보며 산다. 수업시간에 한 폭력과 제국에 관한 얘기가 국가보안법으로 고발당할 건 아닌지, 페이스북에 단 댓글이 선거법 위반은 아닌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을 밝힌 게 징계당할 일은 아닌지…….

 

그렇게 아프고 힘들게 살아간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자성하지도 못한 채 한 끼 밥을 위하여 나를 팔며 살아간다.

 

세월호 참사 42일째인 오늘까지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건져내지 못한 이들이 16명이다. 꿈에라도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의 이름이 비통하게 대한민국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국가가 버리고 떠난 배에 남아 끝내 아이들과 함께 떠난 교사들이 비겁한 나를 채찍질한다.

 

날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는 아이들에게 더는 가만히 있으라고 얘기할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사회는 점점 더 나빠진다.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불의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불의를 어떻게 없앨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 아들딸이 영원히 살고 싶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

 


김중희.jpg

거제옥포고 교사 김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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