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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쓰지도 않는 교과서...비싼 값주고 왜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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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95회 작성일 13-03-2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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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교과서 가격 말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돈 주고 샀나 싶을 만큼 교과서는 학교가 그야말로 '거저'주는 책이었다. 한 권 당 비싸봐야 천 몇 백 원이었고, 3~4백 원짜리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록 삽화가 대부분 흑백인데다 종이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공부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명색이 학교에 근무한 지 15년도 넘었는데, 솔직히 가르치고 있는 과목의 교과서 가격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그저 학년이 시작되기 전, 여러 출판사의 견본 교과서들 중 하나를 공정하게 선정만 하면 그걸로 관심은 끝이었다. 과목별로 그렇게 선정된 교과서는 학년이 시작되면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공지되고 학교가 일괄 구입해 배포하게 된다.

대개의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의 교과서 가격을 잘 모른다. 옛날이야 담임교사가 학급 아이들로부터 일일이 대금을 거두었겠지만, 요즘은 편리한 스쿨뱅킹이 있어서 교과서 가격은커녕 방과 후 수업료 등 납부금이 얼마인지조차도 잘 모르는 실정이다. 아무튼 그렇듯 관심조차 없었던 교과서 가격을 알게 된 건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수업시간에 보지도 않을 교과서를 굳이 사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대금만 자그마치 10만 원이더라고요. 어차피 수업시간에 쓸 '진짜 교과서'는 과목마다 또 사라고 해요. 선배들이 그러는데, 수능 과목마다 준비하려면 해마다 족히 40~50만 원은 더 들 거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진짜 교과서'란 수능 대비 참고서와 문제집을 가리키는 말인 듯했다.

비싼 교과서는 무려 1만 2000원... 수업시간에 보지도 않을 거면서

올해 2학년이 된 아이였다. 그는 학교에서 나눠준 교과서 대금 안내문을 보여주며 애꿎은 필자에게 항의하듯 말했다. 살펴보니 가장 싼 건 3220원짜리 수학 교과서였고, 비싼 건 과학 교과서로 무려 1만2000원이었다. 아마 단순 활자로 구성된 교과와는 달리 과목 특성 상 '올 컬러'에다 사진자료 등이 많이 수록된 탓일 게다. 어떻든 시중 서점의 웬만한 단행본 도서 가격에 맞먹는 액수다.

지난 겨울방학 때 교무실 한쪽에는 과목별 견본 교과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적게는 대여섯 권, 많게는 십 수 권인 과목도 있다. 교과서를 발간한 출판사가 족히 십여 곳, 과목당 두세 권씩 내놓은 곳도 많았다. '그 많은 책을 언제 다 검토하나' 고민만 했을 뿐이었는데, 교과서 가격을 알고 난 지금 생각하니 학교별로 교과서 선정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다.

어느덧 학교 교과서조차 '상품'이 돼버렸다. 대표적인 '박리다매' 품목으로 여긴 채, 출판사들마다 생사를 걸고 학교로, 학교로 득달같이 달려드는 모양새다. 단순 계산으로, 한 학교에서 단 한 과목만 잡더라도 최소 수백 권을 팔아 수백 만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영세한 출판사일수록 학교는 '올인'할 수밖에 없는 '시장'인 셈이다.

그나마 교과서는 한권 당 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지만, 교사에게 필요한 '교사용 지도서'는 학교 예산으로 사달라고 요구하기조차 미안할 정도다. 아이들이 모두 쓰는 교과서와는 달리 해당 과목 교사에게 고작 한두 권 팔리는 정도이니 비쌀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싼 게 만 원 정도고, 한 권에 무려 6만 원이 넘는 과목도 있다.

교실바닥에 나뒹굴고 심지어 폐지함에 버려지기도

문제는 그렇듯 학년 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값비싼 각 과목 교과서가 정작 수업시간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3 수험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은 갓 입학한 고1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대신 '부교재'를 사용한다. 수능과 무관한 예체능 과목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과목에 해당된다. 오로지 일찌감치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비싼 돈을 들여 사놓고 받자마자 곧장 교실 바닥에 나뒹굴고 심지어 폐지함 등에 버려지는 교과서가 부지기수다. 한 아이는 교실 사물함에 보관하려니 공간만 차지하고, 집의 책상 위에 꽂아두려니 먼지만 수북이 쌓일 게 뻔해 그냥 버렸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럼 왜 샀느냐는 '우문'에 안 사면 안 된다기에 샀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교과서 담당 교사에게 추궁하듯 물어봤다. 그 아이의 말처럼, 과연 교과서를 안 사면 안 되느냐고. 당연히 사야 한단다. 학교와 학생의 선택을 고려하여 과목을 융통성 있게 조정할 수는 있으나, 일단 교육과정에 개설된 과목 교과서는 반드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청에서 내려보낸 교과서 관련 지침이 그렇단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과연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부교재'가 교과서 역할을 대신 하는 현실을 모르는 걸까. 그걸 알면서도 규정을 들먹이며 교과서를 강제로 구입하도록 하는 건, 거칠게 말해서, 아이들과 학부모들 호주머니를 털어 여러 출판사들 먹여 살리는 짓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그들은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한 취지라며 'EBS 수능 교재'를 모든 수험생에게 사도록 사실상 강제해오지 않았나. 어쩌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EBS 수능 교재'의 등장으로 부교재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자, 지금껏 기존 부교재를 만들어 팔던 출판사들이 눈을 돌려 '교과서 시장'에 사생결단 식으로 뛰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전국 고등학교의 교과서는 'EBS 수능 교재'

주지하다시피 수능이 'EBS 수능 교재'에서 출제된다는 건 하나의 '공식'이 됐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수능에 철저히 종속돼 'EBS 수능 교재'가 예외 없이 전국 모든 고등학교의 교과서로 자리매김 된 현실에서,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테지만, 교육부도, 교육청도, 또한 학교도 여태껏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결국 애꿎게 아이들과 학부모들만 해마다 경제적으로 이중 부담의 고통을 떠안게 됐고, 이른바 '교과서 무용론'이 아이들 사이에서 확산되면서 학교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다. 교과서가 버려지는 현실은 곧 교육과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버려질 교과서 제작에 사용된 종이 등 엄청난 양의 자원 낭비는 차라리 덤이다.

교과서 대금 안내문을 보여준 그 아이의 날카로운 지적이 매섭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교과서만으로는 수능 대비가 안 된다고 하시는데, 수능을 교과서에 맞춰야지, 교과서를 수능에 맞출 수는 없잖아요. 학교와 학원의 가장 큰 차이점이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쓰느냐, 문제집을 쓰느냐는 건데,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여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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