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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떠나는 진주찾기] 아셨나요? 소년운동의 발상지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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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재경 댓글 0건 조회 2,539회 작성일 13-03-2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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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떠나는 진주찾기] 제2탄
 
아셨나요? 소년운동의 발상지 진주!!

금새 한달이 지나갔다.
쏜 살 같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아닌지 사뭇 고민스럽다.
쏜 살을 요즘은 초고속 카메라로 잡아 상하 리듬을 타며 수십 미터 거리의 무지개 과녁을 향해 초저속 비행하는 그야말로 쏜 화살을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보기 때문이다.
 
 
생뚱맞게 시간 얘기를 꺼내본다.
필자는 여섯 살, 네 살,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삼돌이(애칭)가 있는 세 아이의 아빠다.
학생신분의 여러분들은 부모님께서 “세월 참 빠르다...”라는 말씀을 귓 잔등으로 흘렸을 것이다.
시간은, 세월이라는 녀석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간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느껴지는 세월의 속도감이란 서른일곱의 내 나이조차 부정하고 싶을 만큼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여러분이 좀 더 나이가 들어가고 부모로서 자식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을 그 때, 지금의 내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지....
 
오늘도 보석 같은 큰 아이 수안이와 변화무쌍한 일기를 예측해 가며 채비를 꾸린다.
예상대로 아빠의 말은 안중에도 없다. 벌써부터 오늘의 힘든 달램과 쫓고 쫓기는 두 부녀의 장면들이 눈앞에 선하다. 하지만 어쩌랴. 모델을 윽박질러 혹여나 눈물 쏟게하면 촬영은 엉망이 되고 “아빠 미워!!”하는 메아리가 수일동안 귓가에 멤돌 것이다. 일요일만 시간이 허락되는 지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임전(臨戰)에는 무퇴(無退)의 정신으로 보석같은 수안이와 함께 오늘도 출발~~~
 

아빠.jpg

여러분들을 한달만에 만난다는 설레임에 진주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나 고민하다 다가오는 5월을 좀 더 의미 있게 받아들이자는 생각에 현 진주 교육지원청 왼편에 자리한 ‘우리나라 소년운동 발상지 기념비’를 소개 해보고자 한다.
사진으로 보아서는 촬영의 어려움을 여러분께 전달 할 재주가 없다.
딸아이 활동력이 보통이 아닌 까닭에 주변 분들이 오히려 아빠를 토닥인다.
내 딸이지만 쫌 심하다 싶다. 진짜 말을 안듣는구나...수안아....
여러분들은 아침마다 부엌에서 밥지어 주시는 어머니(엄마)께, 가끔 술 한잔에 기운 없어 보이는 아버지(아빠)께 과하다 싶을 만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
지금 여러분들의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는 지난 유년의 시절들은 그대들이 홀대히 하는 두 부모님의 헌신과 끝없는 무한 봉사의 결실이거늘..

 
각설하고 다시 집중.

 
소년운동 기념비는 1920년 우리나라 소년운동이 진주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자치단체와 진주문화사랑모임 회원들의 마음들이 모아져  완공된 기념비다.

 
여기서 궁금증. 과연 소년운동이 무엇이며 그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소년운동의 주역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어린이 독립운동, 사회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소년운동은 동학과 천도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도교는 동학에 기인한 조직으로 인내천(人乃天)사상은 인간존중, 평등사상을 중시한다.
이는 지배계층에게 억압당하고 핍박받던 여성과 어린이, 편견과 신분제에 억압받던 백성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아빠2.jpg

아래는 당성지, 1933년 5월호에 소개된 조선 소년운동의 역사적 고찰 기사의 내용이다.
 
‘조선 소년운동을 말할 때 에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은 진주소년회이다. 그전에도 어린 사람의 모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흔히 어느 종교의 주일학교나 운동부 강습소 식의 소년부나 운동부이었을 따름인 고로 그것을 가리켜 소년 자신을 주체로 한 사회적 의의를 가진 운동이라 하기는 어렵고, 다만 이 진주소년회라는 것이 기미년 여름에 생겼는데, 이것은 소년회를 위한 소년회가 아니요 어린사람들이 모여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모두 잡혀 갇혀서 그것이 신문지상으로 주목하는 문제 거리가 되어 소년회 이름이 뒤집어 씨워진 것 같이 된 것이다. 그것이 기미년이었는데 그 다음다음 해 신유년 거금 십삼년전 사월에 이르러 경성 천도교 안에서 십상명이 발기인이 되어 조선 육백만 소년을
1.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풀어내어 어린사람으로의 인격을 찾고 지니고 옹호할 것
2. 재래의 쓸쓸하고 캄캄한 무지로부터 풀어내어 새로운 정서를 함양할 것
3. 재래의 비사회적 악습으로부터 풀어내어 새 세상에 새 사람이 되기에 마땅한 사회성을 기를 것
을 주창하고 소년회를 조직하고 천도교소년회의 간판을 붙여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생긴 조선소년운동의 시초였다.'

 
아빠는 보석같은 딸아이를 카메라렌즈에 담고 찰칵이는 셔터음과 함께 가슴속에도 품어본다.
이번엔 이 녀석이 난리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동네가 떠나가라 응석이다. 작은 단풍잎 같은 곱고 여린 손으로 나름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낑낑대며 아빠를 카메라에 담아준다. 수십 컷 중 그래도 한 장 건질게 있다. 잘 찍었구나. 우리 수안이.

 
소년운동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의 인권에 관한 어른들의 각성어린 운동이었다.
시대는 변화와 진화를 거듭한다. 세월도 생명력이 있다.
어떤 성격으로든 시간은 발전지향적인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질문한다.
90년 전, 소년운동이 태동할 수 밖에 없었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시절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과연 지금 시대를 힘겹게 살아내는 아이들이 더 나아진 환경에서 그들을 위한 기본권과 행복권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가는지를 말이다.

 
딸아이와 함께하는 진주 찾기를 엮어가며 아빠로서, 이 시절을 함께하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과 소중한 행복을 어떻게 지켜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또 하나의 숙제가 더해진다.
 
 
아빠3.jpg

[기고/ 조재경 필통 이사]
필자소개 : 아이셋을 둔 다둥이 아빠. 진주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중.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참여연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골목길 아트 페스티벌과 YMCA에 살짝 한발 걸치고 있으며
필통의 이사로 재직중이다.
<아빠와 떠나는 진주 여행>은 아빠와 딸이 함께 진주의 감추어진 명승지나 역사적 공간을 순례하며 역사공간의 가치와 가족간의 사랑을 동시에 확인시켜 주고자 기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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