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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떠나는 진주 찾기] 저울처럼 공평한 세상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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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재경 댓글 0건 조회 2,798회 작성일 13-02-2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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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ㄴ.jpg
                                                                                                                                <진주성 앞 형운동기념탑에서>
 
곧 비라도 쏟아 부을 기세로 잔뜩 움크린 잿빛 하늘, 구름 낀 일요일 아침,
필통 재창간호에 실을 연재기사 그 첫 테마를 준비하기 위해 큰 딸 수안이와 함께 두근대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섰다.
 
며칠 포근하던 기온과 잠잠하던 일기가 오늘따라 얄궂다. 하지만 날씨 따위는 이미 용감한 부녀의 열정적인 데이트를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자...출발!!!
 
내가 나고 자란 곳, 진주는 인구 33만의 작은 도시다. 면적으로 치자면 전국에서 손꼽히나 정작 산과 들을 많이 안고 있어 대도시 필(?)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진주의 너른 산과 들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적 축제로 부각되는 남강의 유등 축제와 우리나라 축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 논개의 얼을 기리는 논개제등 역사와 호흡하며 발생된 무형의 제전들이 있고, 3대 대첩지의 하나인 진주성지와 진주박물관등이 시내 복판 남강변에 위치해 진주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후세에 알리며 그것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킴에 있어 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애칭과 별칭이 대세인 지금, 진주시 역시 많은 대명사로 회자 된다. 충절과 교육의 도시. 문화의 도시. 서부경남의 중심지이자 옛 도청 소재지...여러분 누구나가 한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꾸밈말이다.
 
하지만 필자가 오늘 소개 하고픈, 진주 정신을 대표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운동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아이 셋을 둔 중년을 바라보는 진주 시민으로서 머쓱해지는 순간이다. 형평운동은 진주에서 최초로 일어난 백정신분해방운동으로 그 정신은 90년이 지난 현재에 까지 우리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백정신분해방운동이 왜 하필이면 진주에서 일어났을까?
그것은 농민항쟁과 같은 개혁운동들이 진주에서 활발히 전개되었고 그런 의식을 가진 강상호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숭고한 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92년 형평운동기념사업회(이하 형평회)가 창립 되었고 형평회는 지난 1996년 촉석루 앞에 형평운동기념탑(사진)을 건립했다.
 
남녀가 손을 맞잡고 함께 발맞추려는 조형물에 남녀와 신분 사회적 편견 앞에 당당하고자 했던 형평의 정신이 나타난다. 춥다고 발 동동 구르는 큰 딸아이 수안이를 "솜사탕 사줄께"로 달래어 가며 세상은 공평해야 한다는 소리 없는 외침을 들려주는 그들 곁에 데려다 놓는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여섯 살 꼬맹이지만 ‘저울(衡)처럼 공평(平)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선각자들의 마음과 내 아이가, 그리고 지금 시대의 모든 아이들이 공평한 사회에서 살아갔으면 하는 아빠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현 몰에이지 1030(구.진주극장)의 정문 앞에는 1923년 형평사의 창립 축하연이 이곳에서 열렸고 그것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아마 여러분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꼭 한번 찾아가 보길 바란다.
진주에는 진주정신이 분명히 존재한다.
딸아이와 함께하는 진주 유람을 기획하면서 진주가 품고 있는 역사와 그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주는 필자의 마음은 설레임과 자부심 그리고 행복으로 넘쳐난다. 작지만 기개가 있고 약해보이나 강함을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진주.
 
앞으로 그 이야기 보따리를 딸아이와 함께하며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진주형평.jpg
                                                                                                                        <옛진주극장앞 형평사 창립 기념비>
 
<강상호 선생님>
일제 강점기의 사회운동가로 1919년 3.1운동때 진주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29명중 한분이다. 1923년 4월 25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신현수·천석구등 양반 출신 사회운동가들, 경제력을 가진 백정 이학찬등과 어울려서 백정의 인권운동을 위해 형평사(衡平社)를 설립했다.
 
형평사는 계급을 타파하고 백정에 대한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고 상호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하였다. 1957년 강상호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례는 형평장(衡平葬)이란 이름으로 치러졌다. 장례식 때 상여 뒤로는 그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백정과 바람에 휘날리는 만장(輓章)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현재 강상호 선생의 묘역은 주약동 새벼리 길 석류공원 아래 자리하고 있으며 2012년 4월 25일 묘역 안내판 제막식을 통해 진주 시민의 품에서 그 의미를 다시 재조명 받고 있다.
 
강상호2.jpg

강상호.jpg

[기고/ 조재경 필통 이사]
필자소개 : 아이셋을 둔 다둥이 아빠. 진주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중.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참여연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골목길 아트 페스티벌과 YMCA에 살짝 한발 걸치고 있으며 
필통의 이사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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