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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저울처럼 평등한 세상, 형평 역사캠프를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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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22회 작성일 13-06-10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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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역사캠프.jpg

형평사 창립 90주년을 기념해 형평 역사캠프가 개최됐다.
지난 17일 진주지역 초·중·고교 학생 50여명을 대상으로 1박2일의 일정으로 열린 이번 형평 역사캠프는 대한민국 최초의 인권운동인 형평운동에 대해 바로 알고 형평정신을 배우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형평 역사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은 형평운동의 시발지가 된 진주시 봉래동 진주교회에서 열린 개소식을 시작으로 형평운동의 발자취를 직접 찾아보는 ‘러닝맨’ 활동에 참여해 형평운동의 역사를 직접 체험했다. 이어 지난 4월25일 처음으로 열린 ‘형평 실천 UCC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들을 감상했다.
김병민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사무간사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진주에서 형평운동이 발생했다 사실이나 형평운동기념탑, 강상호 선생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캠프를 통해 진주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큰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연스럽게 인권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개인-역사캠프2.jpg

<소감문>
 
형평운동, 진주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형평역사캠프’ 자리가 한 자리 남았다는 친한 친구의 말에,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형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재미있겠다는 생각 하나로 챔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여고에 다녀서 그런지 남학생들이 많아 너무 어색하고 이런 캠프 역시 처음이라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하였다.
평소에는 한정된 지역에서 한정된 친구들만 사귀었는데 캠프에 와 친해지기 프로그램을 통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노니 너무 재미있었다. ‘형평답사 및 런닝맨 활동’은 시간이 촉박해 다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같이 뛰어다니면서 조원들과 많이 친해지고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되었다.
우리 조원과 했던 마지막 활동이었던 ‘모둠별 표현활동!’
우리 조는 형평사 창립식을 재현하였는데 처음에는 시간이 많다며 잘 하지 않다가 뒤로 갈수록 조원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준비하고 결국 발표를 했을 때, 이전에는 가질 수 없었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밤에 있었던 친해지기 프로그램은 정말 재미있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끝이 났고 밤늦게까지 같이 온 친구와 다음날 있을 ‘형평 골든벨’ 준비를 하였다.
다음날에 있었던 형평 골든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최후의 4인도 풀지 못했던 문제를 내가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았다.
캠프에 오기 전에는 형평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아예 진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조차도 몰랐는데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 최초로 그것도 진주에서 이런 인권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진주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형평역사캠프’ 1기라는 사실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 왔다. 그리고 ‘형평역사캠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기꺼이 응할 것이다.
진주여고 1학년 윤소정
 
도전골든벨 2등, 못내 아쉬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평소 관심이 많았던 역사를 주로 다루던 동아리가 있다 하여 등록하였다. 가장 먼저 접했던 역사적 사실은 ‘형평운동’이었다. 중학교 때 단지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만 배웠지 그 속에 담긴 내용과 인물들은 배우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마침 동아리 활동으로 ‘형평 UCC'는 물론이고 ’형평역사캠프‘에도 참가하게 된 것이다. 캠프 활동으로 ‘친해지기 프로그램’이 인상 깊었다. 모두가 어색해하고 두리번거릴 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다.
또한 답사활동으로 형평운동 유적지 여러 곳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여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생생하게 그 속의 역사를 배울 수 있어 뜻깊었다. 1박 2일간의 캠프를 통해 거짓말 같지만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형평운동에 관련된 많은 인물들을 알게 되었고 진주에 살면서도 미처 가보지 못한 유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형평운동에 대한 정보를 모두 배울 수 있어 보람찬 이틀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도전 골든벨에서 2등을 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년에도 참가했으면 좋겠다.
 
사대부고 1학년 신동혁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운동, 우리 진주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형평운동은 1909년 진주교회에서 일어난 백정 동석예배 거부 사건을 시발점으로 일어난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인권 신장을 목표로 하는 한국 최초의 인권운동입니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장승환)는 올해 형평사 창립 9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백정과 조선 시대의 백정이 다르다는 점은 이미 배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정, 즉 도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조선 시대에 천대와 차별을 받던 계층입니다. 마을에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자기들끼리 모여 살 정도였으니까요. 갑오개혁에 의해 백정도 법적으로 다른 사람과 같은 권리를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법이 보장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오랜 인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요.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드디어 백정들이 이러한 사회적 차별 대우에 반발하고 나섭니다. 바로 형평 운동입니다.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운동을 편 것이죠. 1920년대 초 전통적인 신분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백정들이 급격하게 평민화되어 가는 가운데, 영남 지방은 타지역에 비해 백정의 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성격이 강하여 백정들에 대한 멸시가 매우 심했습니다. 그러자 1923년 진주에서 백정 이학찬이 조선 형평사1)를 창립하고 형평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형평 운동을 벌이는 취지문을 읽어 보지요.
"지금까지 조선의 백정(白丁)은 어떠한 지위와 어떠한 압박을 받아 왔던가? 과거를 회상하면 종일토록 통곡하여도 혈루(血淚)를 금할 길이 없다. 여기에 지위와 조건 문제 등을 제기할 여유도 없이 일전의 압박을 절규하는 것이 오등(吾等)의 실정이다. 이 문제를 선결하는 것이 아(我) 등의 급무라고 설정하는 것은 적확한 것이다. 비(卑)하고 빈(貧)하고 천(賤)하고 굴(屈)한 자는 누구였던가?"
 
즉 형평 운동은 평등 사회를 지향한 것이었습니다. 인종이나 직업 등을 넘어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근대 평등 사회의 이념인 것이지요.
 
개인-형평.jpg

개인-형평2.jpg

 
[취재 : 구광모(중앙고2)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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