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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 가오를 강요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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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88회 작성일 18-03-2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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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학교, 가오를 강요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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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 KBS '후아유-학교 2015'의 한 장면>

 

 


새학기가 시작되면 3학년이 된 학생들이 가오를 잡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입생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엄격하게 규정을 지키라 요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후배의 반에 들어가 큰 소리를 치기도 한다. 처음 보는 후배에게 당연하게 반말을 하면서 자신은 존댓말을 듣기를 원한다. 자신이 선배이기 때문이다. 아랫학년 학생을 찍는다라고 하는, 낙인 찍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그 결과, 아랫학년 학생은 찍히지 않기 위해 윗학년의 눈치를 보게 된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찍힐까봐말하지 못한다. 윗학년은 후배한테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되고, 져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굳이 가오를 잡아야 한다.

 

학생은 학교에서 파편화된 개인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단으로 존재하고, 위계는 집단 사이에 스며든다. 학교 안에 가장 큰 덩어리 집단 중 하나는 학년이다. 학년 사이에 발생하는 위계(선후배 위계)는 학년 사이의 갈등이다. 그럼 왜 이런 위계질서가 발생하는 것일까?

 

학교는 학제를 통해 학년을 구분한다. 일반적인 경우, 학생들은 학년에 따라 구분된 시공간에 존재한다. 학교라는 같은 건물아래 있지만, 분리된 집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1학년 교실과 2학년 교실, 3학년 교실이 층이나 위치로 구분되어 있고, 학년마다 체육관이나 급식소 등의 공용공간을 사용하는 시간과 구역도 다르다. 이것이 학교가 학제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공식적인 분리이다.

 

학제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것은 분리만이 아니다. 학제는 계급을 나누고, 위아래를 인식하는 위계질서를 만든다. 각 학년의 체육복, 명찰 등의 색을 다르게 하여 구분한다. 눈으로 보여지는 확실한 계급을 나누고, 그에 맞는 행동들을 강요한다. 한 학생이 처음 보는 다른 학생을 어떻게 대할지를 결정짓는 가장 큰 것은 명찰의 색이다. 높임말을 쓸지, 반말을 쓸지, 얼마나 예의를 갖추며 호칭은 무엇으로 할지. 아무것도 아닌 단색의 이름표는, 학생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

 

학교의 위계질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다. 위계는 제도와 문화에 의해 구성되었다. 계급을 칼같이 나누는 공간, 분리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공간일수록 위계는 단단하다. 학교는 학년 간의 위계질서를 필요로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권력과 힘을 차지하는 구조는, 그 사회의 보수적인 가치를 되물리는데 최적화된 구조다. 쓸모없어 보이고, 피곤하고, 불평등한 학년위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내가 1학년일 때 당했으니까 해도 돼, 꼬우면 선배돼서 하던지.”

하는 안일함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새로 입학한 1학년생들은 새로운 학교의 규칙에 당황하며 반발심을 가진다. 특히 학생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각종 규제가 그렇다. 하지만 3학년쯤 되면 반발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학교가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논리를 어느정도 내면화하게 된다. 3학년은 화장을 좀 하더라도 갓 들어온 신입생이 화장하는 꼴은 못 본다. 3학년이 바지와 치마를 좀 줄이더라도 후배들이 같은 행동을 하는 건 바로잡아야 하는 대상이다.

 

심지어 화장하는 1, 2학년을 통제할 때, 교사가 3학년의 소위 노는 학생들에게 통제를 권유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위 학년이 아래 학년을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학교는 1학년은 사리고 다닐 것, 2학년은 3학년 되서 할 것, 3학년은 모범을 보일 것을 얘기한다. 윗학년이 아랫학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구조는 학교가 일정부분 만들어 낸 것이다. 학교는 그들이 원하는 보수적인 가치를 위계질서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계질서를 묵인한다.

 

학교는 폭력적인 구조를 조장하고 묵인한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선후배 사이의 권위주의와 갑질문화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후배가 폭력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다. 설사 학년 사이에 위계폭력이 학교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더라도, 책임에서 학교는 쏙 빠진다. 학생 간 폭력의 책임은 가해학생에게 있을 뿐이다. 학생 위계, 학년 위계라는 학교의 본 얼굴을 숨긴다. 부담은 학생들에게만 돌아간다. 선배는 후배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선배라는 틀에 자신들을 가두고 가오를 잡는다. 후배에게 얕보이지 않으려 후배를 억압한다. 후배는 억압하는 선배를 무서워한다. 학교는 어부지리로 학생들을 수월하게 통제한다.

 

폭력은 매해 되물림된다. 당한만큼 되물려주는 형태로 말이다. 모두가 공평하게 1, 2, 3학년을 다 겪는 구조에서 불평등을 알아차리긴 쉽지 않다. “내가 1학년일 때 당했으니까 해도 돼, 꼬우면 선배돼서 하던지.” 하는 안일함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이 구조의 부당함을 말할 수 있고, 평등해질 수 있다. 이제는 학교에게 이 구조와 폭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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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경북 구미의 한 마이스터고등학교에서 선배들이 신입생을 수차례 괴롭힌 사건이 뒤늦게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글쓴이 : 케치, 무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2006년부터 청소년인권을 위해 활동해오고 있는 청소년운동단체입니다. 아수나로 진주지부는 언제나 함께할 회원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입 및 후원문의 : 010-9770-8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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