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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통캠페인] 학교폭력, 문제인줄 알지만 대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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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74회 작성일 13-05-0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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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1.jpg

학교폭력, 문제인줄 알지만 대책은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학교폭력문제가 어찌 어제 오늘의 일인가? 하지만 요즘은 차원이 많이 다르다. 그 폭력의 강도와 심각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자살등의 극단적인 결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점이 있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전혀 변화가 없다. 큰 사건이 발생하면 연일 떠들다가는 금새 조용해지고 비슷한 자그마한 사건 사고는 학교담을 넘기지 않기 위해 철통 보안을 유지하고 쉬쉬하며 지나간다. 선생님 학교 교육당국 어째 모조리 한통속이 되어 숨기고 덮기에 바쁘다.
 
마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문제의 치유나 해결보다는 문제를 숨기고 가리며 학생들 입단속만 시키만 그만이다. 그리고는 CCTV만 많이 설치하면 노력의 완성~이다.
 
학교폭력을 없애려면 근본적으로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 입시위주의 교육제도, 성적지상주의, 학벌지상주의가 요지부동인 현실에서 우리의 학교는 변화의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다. 전인교육, 인성교육은 토론회에서나 하는 말이고 선생님들의 교권이나 학생들의 인권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서울대에 몇 명을 보내는지, 대학 진학률이 어마나 높은지 그것이 명문학교의 기준이고 학교 선생님 학부모 할 것 없이 그것에 목을 맨다.
 
그래서 학교도 그 확률을 높이는 과학고 외고, 자사고, 자공고로 구분하고 일반고는 그 경쟁에 1차 탈락한 아이들의 학교로 구분해 놓는 희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학교란 곳이 대체 어떠해야 하는가? 과연 선생님들에게 학교란, 학부모에겐 학교란, 학생들에게 학교란 무슨 의미일까? 공부 꽤나 한다는 학생들에게는 일류대학이라는 목적이 있고 어중잽이 학생들에겐 대학진학이라는 목표가 있고 공부와 담 쌓은 학생들에겐 잠자고 시간 때우는 졸업장 받기 위한 지겨운 시간일뿐이다.
 
학교란 곳이 대학을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그 진군의 한길에 동참하는 학생들과 억지로라도 질질 끌려오는 학생들만 존재한다면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가 눈에 뛸 리 없다. 그러나 어떻게 토끼몰이하는 것도 아니고 한곳으로만 몰아가는 이런 비정상적인 교육에 아무 문제가 없을수 있겠는가? 그러나 경쟁에서 뒤떨어지거나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 또 그것을 거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대책은 없다.
 
혼자 방법을 찾고 혼자 고민해야 한다. 학교에선 궤도를 이탈하면 징계를 주고 듣지 않으면 전학 또는 퇴학시키면 그만이다. 그것으로 부족하면 법으로 하면 된다. 문제될 것이 무엇인가? 내일이면 아무일 없다는 듯 똑같은 학교의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쩌다 누군가가 자살을 하거나 선생님이 맞거나 학교폭력으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성폭행이 발생하거나 할 경우엔 그저 요란하고 시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모두들 무책임하게 생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학교폭력5.jpg
 

학교와 선생님이
학생들의 손을 잡아 줄 순 없는 걸까요?
 
학교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그 시절을 훌쩍 지난 어른들이야 추억에 잠겨 이런 저런 재미있는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안타깝게도 학교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낱말중에 하나가 ‘폭력’이라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학교와 폭력, 참 어울리지도 어울려서도 안될 것 같은 두 단어가 만든 ‘학교폭력’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이 되어버린 지금, 무엇이 문제일까?
 
학교폭력으로 꽃 같은 어린 청춘이 스스로 생명을 끊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고통스러워 하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큰 사건이 터지면 뉴스에 대서특필되고 CCTV가 설치되고 약속이나 한 듯 모든 학교에서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과 교육이 줄을 잇는다. 무슨 매뉴얼이 있는 마냥 똑같다. 그리고는 또 한 참 정숙 모드다. 바뀐 것은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바꿀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하루아침에 교육제도가 바뀔 수도 없고 우리의 학벌중심, 대학서열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도 없다. 학교와 학부모가 바라는 학교는 오로지 자신의 아들 딸, 자기 학교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학교와 선생님이 조금만 시선을 돌려 끌려가면서 힘들어 하는 학생들, 진격 앞으로 대열에서 낙오되는 학생들에게 그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 주고 프로그램을 개발해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열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학교의 모습이고 우리 선생님의 얼굴이 아닐까?
 
‘학교폭력’은 하나의 현상이고 문화다. 우리의 교육제도와 학교가 투영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그래서 단속하고 처벌하고 감시한다고 사라질 수 없는 것이고 늘 존재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교를 가야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고 함께 소통할 친구들을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선생님의 곁을 조금 내어 준다면 학교와 폭력이 영원한 친구마냥 들러붙어 있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학교폭력6.jpg

[필통편집국]
 
 
도덕과 윤리를 배울 수 있는 학교가 필요
 
 
요즘 학교 폭력의 문제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모든 학교에서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하고 가해자인 학생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정부와 교육청은 이제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어가고 있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학교 폭력은 최근에 크게 우리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지만 요즘 갑자기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학교폭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학교에 깊이 뿌리를 잡고 있었다. 지금의 선생님들이 학교를 다닌 시절부터 존재했고 계속 존재했던 그것의 모습이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 일시적으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가해자들, 흔히 잘나가는 학생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은 학교 폭력을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 것일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장교가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서에 최종 승인을 한 사람으로써 2차 세계대전 당시 최악의 전범으로 알려졌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고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가 그를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서 재판 하려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그는 인성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의 모습에 놀란 <한나 아렌트>라는 한 여성 철학자가 그의 재판 과정을 취재했다. 그리고 그녀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가 유대인 학살자가 된 이유는 '철저한 무사유 sheer thoughtlessness' 였다 밝힌다.
 
아렌트가 생각하기에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 학생들의 모습에서 아이히만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을 1대1로 만나보면 그렇게 나쁜 아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왜 아이들을 괴롭히면 안 되는지,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면서 죄책감을 느껴야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학교 폭력을 저지르지만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악마나 사이코패스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 ‘보통‘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들은 도덕 교육을 받는다. 타인을 배려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선생님들은 가르친다. 하지만 과연 학생들이 그것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학생들의 인성에 영향을 미쳐야 할 도덕 교육이 그저 암기과목에 불과한 교육이 되어 가고 있다. 학교폭력을 뿌리 뽑으려면 아이들을 체벌로 다스리기 보다는 아이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그저 외우기만 하는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생활에서 실천 하도록 하는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학교 폭력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윤산하 기자(간디고2)]
 
 
 
다른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해
 
 
요즘 학교폭력에 관한 문제로 사회적으로 많은 이목이 쏠려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왕따’라고 불리는 학교폭력이 많은 학생의 목숨까지 앗아갈 만큼 심각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문제다.
 
‘왕따’는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타인과 나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5천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 중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을까? 비록 겉모습은 닮았을지라도 생각하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즉,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수용한다면 그것은 곧 다름이 아니라 관심과 이해로 바뀔 수 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판하기보다 “아, 저 사람에게는 저런 모습이 있구나!” 혹은 “저런 모습은 좀 배우고 싶고 저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 등 열린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대한다면 화합하고 소통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에서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지 못하고 멀리한다면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타인에 관한 관심과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왕따’를 없애기 위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김진주 기자(제일여고2)]
 
 
 
학교폭~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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