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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의 권리는 어른들이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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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98회 작성일 17-12-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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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권리는 어른들이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진주에서 청소년운동 하는 사람의 주저리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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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홉 달 동안 필통에 글을 쓰는 게 힘들었다. 내가 느끼는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색다른 시선을 제공하기 보다는 이미 청소년운동이 만들어놓은 논리에 살만 붙여 소개하는 글만 써왔기 때문이다. 진주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청소년운동의 논리와 사상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표로 글을 써왔고, 언제부턴가 이런 목표는 내게 강박으로 작용했다. 글을 한 편 쓸 때마다 회의감과 무력감, 지루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처음 필통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땐 독자들과의 쌍방적인 교류와 소통을 기대했고, 그걸 바탕으로 진주에서 더 크게 청소년운동 판을 벌여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종의 내 자기소개이자 내가 몸담고 있는 청소년운동에 대한 소개를 해왔던 것이다. 나에게 청소년운동의 이론과 논리가 어떤 날선 해방구가 됐던 것처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내 소개글이 해방구로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꽤 많은 글을 썼고, 자극적으로 제목을 뽑아보기도 했고, 내 부끄러운 기억들까지 풀어놓았건만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글이 도움이 됐노라 위로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글을 쓴 아홉 달 동안 내 얼굴 사진과 이름과 카카오톡 아이디까지 함께 걸어놓았는데, 필통을 보고 연락했다며 알게 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난 분명 청소년이고, 청소년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싸움을 하는데, 꽤나 절실하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와 가까이 사는 청소년들과는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괴리감은 날 외롭게 했고, 난 청소년들이 낯설어졌다.

 

내가 느꼈던 운동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는 별개로, 2017년 한 해는 경남 청소년운동 지형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생긴 해다. 새로운 활동가들이 늘어나고, 진주와 경남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창원에서는 매 달 집회도 진행하고 있다. 교육청에서도 우리 목소리를 약간이나마 의식하기 시작한 거 같다. 경남에서 우리가 더 조직되고 커져 싸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난 약간의 욕심이 있다. 나는 좀 더 많은 청소년들이 일어나 대중적인 조직을 만들고, 함께 싸우는 걸 꿈꾼다. 진주 안에서만 적게는 몇 백 명의 청소년들이 조직되어, 불합리한 일, 반인권적인 일들에 맞서 싸우길 바란다. 강제야자, 체벌, 두발복장규제, 청소년들의 밑바닥 노동, 현장실습문제, 무한입시경쟁, 성차별, 나이차별과 같은 청소년억압에 맞서 한바탕 해보고 싶다.

 


 

"우리의 권리는 어른들이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청소년이 존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길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야 한다."

 

 

 

1988527, 대아고 학생 2,000명은 강제야자폐지, 두발자율화, 학생회 탄압분쇄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반나절동안 운동장에서 농성을 진행했다. 학교는 주동자들을 퇴학시키고 정학시켰지만 학생들은 꾸준히 학교 안팍에서 시위를 벌이고, 등교거부투쟁을 했다. 4개월 동안의 긴 싸움 끝에 학교는 학생회 탄압을 중단했고 학생들의 요구를 배려하기로 약속하며, 학생들과 협상했다. 주동자들은 싸움이 끝나고 이사장과의 면담에서 그동안 투쟁하는데 쓴 비용 200만원을 받아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학생회 직선제 또한 80년대 민주화운동 때 고등학생운동이 싸워 쟁취한 성과이다. 그 전엔 교장이나 교사들이 맘대로 임명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직선제를 보장받는 지금의 학생회는 온전히 학생의 정부이자 조합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당선된 학생회 임원에게 학생들이 당선증을 주는 게 아닌, 교장이 임명장을 수여하는 학생회의 모습은, 학생회의 힘이 누구로부터 인정되고 있는지 너무 똑똑히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가.

 

80년대에, 우리보다 앞서 태어난 이들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던가. 그들의 주장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한입시경쟁에 반대하고, 청소년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라는 요구, 내 머리카락과 몸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학생회가 학생회답게, 학생의 권익을 주장하는 조직으로 설 수 있게 하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때리지 말고, 인간으로 대우하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단 말인가. 왜 우리는 점점 지쳐가며 순응하기만 하는가. 우리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우리의 권리는 어른들이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 만족하고 정체한다면 우리는 더욱 교묘하게 억압당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 청소년이 존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길에 함께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할 때 더 커지고 강해질 것이다.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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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영은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청소년 바보회>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입니다. 제 연락처는 010-9770-8603입니다. 카톡이 부담스러울까봐 한 번 올려 봅니다. 부담 갖지 말고 연락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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