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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 바라 본 세상] 젊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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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86회 작성일 13-04-3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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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와소년.jpg
 
 
종일토록 비가 내리고, 고삼이는 내내 잠을 잔다. 밤은 깊어가고 빗소리는 방울방울 가슴을 때리는데 그리워할 애인도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꿈도 없이…….
교실 구석에서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정수리를 바라보는 나도 외롭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뭔가 세상에 필요한 재능이 하나쯤은 있을 터인데, 학교에만 오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아이들로 변해버리는 슬픈 세상.
 

빈 의자처럼 앉아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문득 <케스-매와 소년 / 배리 하인즈 / 녹색평론사>의 주인공 빌리가 생각난다. 빌리도 아무것도 아닌 학생이다. 집에서는 배다른 형한테 시달리고, 어머니는 아예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가난한 그들은 가족이기보다는 어쩌다 얽힌 동거인이다. 또 마을 어디에서도 반겨 주는 곳이라곤 없고 고달프기만 할 뿐이다.
학교에 가면 졸다가 매를 맞고, 벌과 조롱과 구박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만 그는 순순히 길들여지지 않는다. 무작정 견뎌나가다가 폐허가 된 높다란 성벽 새둥지에서 꺼내다 키우는 야생매 케스를 만난다.
 

빌리는 매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성장단계에 따라 체계적으로 훈련시킨다. 매는 신경이 예민하고 눈이 좋아서 매우 민감하게 자극을 받기 때문에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땐 부지런히 말을 건네며 걸어야 한다. 마침내 묶었던 줄을 풀고 날리는 훈련을 시작한다. 그는 매가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빌리는 결국 케스를 믿었고 케스는 줄을 묶었을 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돌아온다.
 

학교마다 수많은 빌리들이 있다. 그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나는 부끄럽다. 빌리가 케스에게 한 것처럼 학교는 왜 아이들을 믿고 발목에 묶인 끈을 풀어주지 못하는가? 온갖 규칙과 벌칙으로 구속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길을 찾아가리라는 믿음을 우리는 왜 갖지 못하는가?
파아딩 선생님은 빌리가 발표한 이야기와 그가 쓴 글을 보며 외롭고 힘든 아이인 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다가간다. 빌리도 학교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인정해주는 선생님이 좋아서 자기 혼자서만 즐기던 케스를 보여준다.
 

아이들과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만나는 게 정말 힘들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그 아이와 내가 만날 수 있을지, 그 아이가 관심이 생겨 스스로 나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은 하지만 나는 늘 실패하고 만다.
 

빌리는 황당한 허구,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쓰라는 과제를 받고 이렇게 쓴다.
 

하루는 내가 께어나니까 엄마가 자 빌리야 침대에서 아침을 머그려무나그래서 보니까 배이콘과 달걀과 버터 바른 빵과 커다란 주전자에 차가 한 주전자 있었구 아침을 먹는데 바께는 해가 빗나고 있고 그래서 나는 옷을 입고 아래층에 내려갔다. (……)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들은 나한테 친절하고 얘 빌리 잘 지내니하고 말하고 모두들 머리를 쓰다드머주고 미소를 짓고 우리는 하루종일 재미있는 걸 했다. 집에 오니까 엄마가 인재 나는 일하로 안 간다하고 우리는 모두 점심에 칩스하고 콩을 먹고 준비를 해가지고 모두 영하를 보러 가서 이층에 올라가서 마깐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모두 집에 와서 저녁에 생선하고 칩스를 먹고 그리고 잣다.”
 

빌리는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을 허구라고 쓰고 있다. 이 소박한 일상이 그에게는 허구 속에서나 가능할 행복한 꿈이다. 사실은 그의 간절한 외침이고 소망이다.
엄마, 나를 다정하게 보살펴 주세요.’ ‘선생님, 저도 잘하는 게 있어요.’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른들은 어린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의 행복이나 아이의 삶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가정과 학교는 아무 생각 없이 관행대로 흘러간다. 그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시들어간다.
 

빌리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일은 매를 키우는 것이었다. 매와 놀 때만은 마냥 행복했다.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지만 매 기르기책을 사서 홀로 공부했고, 오랜 기다림과 열정 끝에 매 날리기도 성공했고, 마침내 매 케스와 하나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빨리 무언가를 포기해 버린다. 해낼 수 있었을 많은 일들을 내버려 둔 채 살아간다. 삶을 가꾼다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한 우리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일이 아닐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아이들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능력을 펼칠 기회를 짓밟는다.
 

케스는 빌리의 실수 때문에 화가 난 형의 손에 죽는다. 분노한 소년은 집을 뛰쳐나와 어린 시절 아빠와 손잡고 왔던 극장에 몰래 들어간다. 아빠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키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 잠이 든다.
 

사랑하는 아빠와 매를 잃어버린 슬픔과 분노와 그리움으로 애통해하면서도 결국 싸늘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금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 위로도 공감도 없는 가족과 사회,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애달프다!
 

버겁고 외롭게 살아가지 않는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배움과 나눔이 얼마나 고맙고 기쁜 일인가를 느끼면서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어디에 있을까? 다르게 생각하는 힘,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잔인한 것은 무관심이 아닌지?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젖으며 밤늦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툭 질문을 던진다.
 

젊은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꽃.jpg

[기고/ 김중희 선생님(중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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