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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이주의에 저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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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92회 작성일 17-08-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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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이주의에 저항하자!

몇 살이야? 19? 내가 형이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겠지?’

 

 


나이.jpg

을 만하면 듣는 말이다. 유형도 다양하다. 대놓고 반말부터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부턴가 자기 멋대로 반말을 쓰다가 , 말 편하게 해도 되지?”하며 차마 내가 아니오라는 답을 던질 수 없는, 허락을 구하는 듯한 통보를 당하기도 한다. 오히려 익숙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가 반말을 하는 게, 아랫사람 대우를 하는 게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배운다. 웃어른에겐 높임말을, 공손한 표현을 써야 하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구분하여 다르게 행동해야 함을.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면 새로운 기준을 배운다. 한두 살 차이에도 깍듯이 높임말과 반말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며, 그러지 않는다면 공격당한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리는 나이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복잡한 규칙을 습득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사회화의 과정은, 우리가 사람을 나이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 대하게 하도록 고착시킨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기를 꺼려한다. 한 쪽이 반말을 하고, 다른 한 쪽은 높임말을 하는 상황은 분명히 상하 위계질서가 만들어지는 상황이다. 나이의 높낮음에 따라 사람의 높낮음이 정해지는 거다. 과연 옳은가? 나이라는 임의의 숫자, 그리고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를 묻는 그 의미 없는 기준(사실 한국 나이는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를 무시하기마저 한다. 이를테면 빠른 년생이 그 예.)에 인간의 높낮음을 따지는 것이.

 

 

청소년운동은 나이라는 것을 깊게 분석한다. 사회에서 나이는 결코 삶의 길이를 나타내는 숫자가 아닌, 삶의 형태를 좌우하는 장치이자 관념이다. 우리는 나이에 따라 상하의 위계를 형성하기도 하며, 특정 나이대의 사람은 이러해야 한다는(또는 이러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나이는 시민으로, 인간으로, 또는 성적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청소년은 나이위계의 최하층에 존재한다. 쉽게 반말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만만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미성숙하고, 충동적이고, 객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다. 청소년은 나이-생애주기적인 관점에서 학생다움또는 청소년다움을 강요받는다. 청소년은 비청소년에 의해 만들어진 이상적인 청소년(학생)’이라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게 강요받으며, 스스로를 검열한다. 청소년은 시민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20살이 되지 못해 미성숙하기에 선거권을 비롯한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하며, ‘시민이 되어가는 존재로 대상화된다. 동시에 만들어지는 과정의 인간이자, ‘성(性)적이어서는 안 되는(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다.

 

 

 

나이의 적고 많음 따위를 기준으로 높낮이를 따지지 않으며,

높임말과 반말의 구분은 친한 정도에 따라 달리하자.

나이의 정상성에 저항하자.

 

 

 

청소년운동은 이러한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나이에 대한 억압을 표현할 언어를 만들고자 했고, 이를 나이주의라 이름 붙였다. 청소년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나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으며, ‘나이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곧 청소년을 억압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청소년 해방의 해결책은 나이주의의 철폐에 있다.

 

 

나이주의는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 나이주의적 사회는 특정한 나이대의 사람에게 정상성을 부여하고, 이는 상황과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하고 성적 주체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젊은 남성 비청소년이다. 노인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할 경우 추하다고 여겨진다. 여성은 성적 주체로 위치하지 않으며, 늙은 여성은 성적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젠더에 따라 젊음늙음의 관념은 달라진다.

 

 

나이주의는 모두의 문제다. 나이주의적 사회에서 정상성은 특정 시점에 위치할 수밖에 없고, 어떤 이들은 단 한 번도 정상성에 위치하지 못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로짓는 이데올로기는 배제와 차별을 낳는다. 우리는 모두의 해방을 위해, 의미 없는 숫자에 저항해야 한다. 적어도, ‘나이를 의미 없는 숫자로 퇴색시켜야 한다.

 

 

끊임없이 불편하자. 조금의 불편함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 나이에 따르는 관념을 무너뜨리자. 나이의 적고 많음 따위를 기준으로 높낮이를 따지지 않으며, 높임말과 반말의 구분은 친한 정도에 따라 달리하자. 나이의 정상성에 저항하자. 우리의 해방은 모두의 해방이며, 나이로부터 삶의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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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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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영은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청소년 바보회>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입니다우리 사회에 대해 글을 쓰는 글쟁이이기도 합니다더 궁금한 점이 있거나뜻을 함께 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카카오톡 (박태영 ID:hexaframe)으로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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