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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남이 페미니스트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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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1회 작성일 17-07-1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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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에서 바라본 세상

한남이 페미니스트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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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젠더(사회적 성별) 권력의 (남성이 비남성에 비해 우위를 가지는) 차이를 극복하고, 성평등을 이루자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남성중심적으로 이루어진 세계관을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하고, 최근에는 성소수자 담론과도 연대하는 실천적 운동론이기도 하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에 동의하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성소수자와 연대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가 처음부터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였던 건 아니다.

 

나는 흔한 한남(한국 남자)이었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남성연대 속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를 대상화했고, 말과 행동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뒤덮여있었다. 여성을 개념녀와 김치녀의 범주로 구분 짓는가 하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여성을 타자화(특정 대상을 다른 존재, 차이를 가진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어떤 이질적인 집단으로 부각시키는 것)하며 남성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일베충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 주변의 많은 남성들도 그러했다.

 

그런 내가 2015년 겨울에 페미니즘을 만났다. 어느 날 고려대 여성주의 학지 <석순> 46호를 우연히 읽게 됐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남성의 시선과 권력으로만 세상을 봐오다가, 처음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운 것이다. 페미니즘은 내 머릿속의 단단한 남성중심의 관념을 긁어내고 있었고, 난 원래의 모습(사실은 권력이었던)을 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필사적으로 페미니즘의 논리를 막아내려 애썼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읽으며 페미니즘의 논리를 어떻게든 반박하려 힘쓰고, 논리-문법적 오류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일베충식 페미니즘을 한 셈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이론은 내 지금까지의 삶이 왜 남성중심적이며 비남성 타자를 배제하고 대상화하는 방식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었다. 페미니즘을 반박하기 위한 관성은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드리려는 생각으로 치환되었고, 결국 페미니즘의 논리에 설득되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페미니즘을 받아드렸다.



페미니즘은 남성으로서의 나가 아닌

한 명의 평등한 존재로서의 를 

마주하게 한다.


 

그러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 시점부터, 우리 사회의 젠더 불평등과 모순, 그리고 여러 소수자들이 겪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감하게 되었다. ‘청소년이라는 나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되었다. 올해 인권운동을 시작한 건 내 인생의 구도를 크게 뒤바꾸는 일이었는데, 이것도 페미니즘을 배웠기에 시작한 일이다. 내 삶은 페미니즘을 배우기 전과 배운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페미니즘은 내 생각과 행동방식을 바꿔놓았다.

 

남성이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건 자신이 가진 권력을 해체하고, 억압자로서 위치하는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남성의 페미니즘이 단순히 억압받는 이와의 연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성해방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해방으로 작용한다. ‘남성성남성다움에서 탈피하여, 사회가 규정하는 남성의 역할규범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젠더권력의 불평등에서 나온 불편함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설명할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젠더모순을 얘기할 언어를 갖게 되면서, (sex)적 존재로서의 내가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세상을 권력관계를 이해하게 해주고, 평등한 세상을 위한 나의 지침을 마련해준다. 페미니즘은 남성으로서의 나가 아닌, 한 명의 평등한 존재로서의 를 마주하게 한다.

 

앞서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면서 또 한 번 느꼈지만,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엔 많이 부끄러운 사람이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하는 게 불편한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더 많은 한남들이 페미니즘을 알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칭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으로 이 글을 썼다. 오늘 한남인 내가 페미니즘을 접한 이야기를 글로 푼 게, 누군가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빠져드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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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영은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청소년 바보회>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입니다우리 사회에 대해 글을 쓰는 글쟁이이기도 합니다더 궁금한 점이 있거나뜻을 함께 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카카오톡 (박태영 ID:hexaframe)으로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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