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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역사투어] 진주에 딱 하나밖에 없는 국보가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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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76회 작성일 17-03-1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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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역사투어] 천년고찰 청곡사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진주에 딱 하나밖에 없는 국보가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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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사 전경>



진주의 역사를 찾아가는 진주역사투어! 오늘의 주제는 '진주의 국보' 입니다.

진주에 국보가 있었단걸 아시나요? 진주에 국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국보를 만나러 청곡사 문화박물관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진주 청소년들이 한번쯤 찾아보기 참 좋은 곳이 바로 월아산 청곡사다. 말 그대로 천년고찰이다. 신라 헌강왕 5(872)년에 도선 국사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으니 그동안의 사연도 참 많을 듯 하다. 푸른학이 날아온 명당터라 해서 지어진 이름인 청곡사에서부터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로맨스까지, 청곡사 주차장에서 운치 넘치는 일주문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도 재미진 일이 않을까?

 

우리가 사는 진주의 유일한 국보를 다름 아닌 이곳 청곡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건물 3층 규모의 거대한 그림 한 장, 탱화를 보기 위해 지하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 가서 만나게 되는 조금은 색다른 부처의 모습, 왠지 모를 엄숙한 기운도 일상을 떠난 새로운 경험이 될 듯하다.

 

반복되는 일상, 조금은 답답한 시간들의 연속일수 있는 학창시절. 마음 맞는 친구들과 가끔 일상을 깨어 보는 것도 생활의 활력이 되지 않을까? PC방 노래방, 영화관도 좋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맘껏 자연을 즐기고 역사를 여행하며 새로운 경험으로 추억을 쌓아보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닐까? 261, 262번 시내버스를 타고 금산과 금호지를 지나 갈전마을에 내리면 1킬로도 되지 않는 곳에 천년고찰 청곡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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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사 일주문을 들어서는 길>




진주 유일의 국보 영산회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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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금산면 청곡사 문화박물관에 국보가 있다. 국보란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인 가치가 큰 문화재로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한 문화재를 말한다. 청곡사에 있는 국보는 제302호로 정식 명칭은 청곡사영산회괘불탱이다.


이 그림은 조선 경종 2(1722)에 승려화가인 의겸과 80명의 승려가 참여해 석가가 마지막으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불교 그림이다. 압도적인 크기의 이 탱화의 규모는 세로 길이 10.4m, 폭은 6.4m 크기이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큰 불교 그림이다. 석가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그려져 있다. 문수보살은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며 보현보살은 부처님의 행동을 대변하는 불교그림에 항상 등장하는 대표 인물들이다.

 

이 국보 탱화는 박물관 지하 2층 지상 1층을 활용하여 보관하고 전시, 관람하게 하고 있다. 전시장이 마련되기 전에는 나무 궤 4개를 이어서 만든 통에 말아서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7대괘불 중 유일한 국보로서 실제로 보면 크기도 엄청 크고 장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이 박물관에서는 국보인 괘불 이외에도 보물 1232호로 지정된 대범천왕 및 제석천왕, 태조 이성계가 신덕왕후와의 혼인을 기념하여 만들었다는 청동향완, 업경대, 청동여래좌상, 나반존자 등의 가치 있는 문화재를 만나 볼수 있다. 크지 않은 작은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잠시 먼 역사속으로 빠져들게 하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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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 금지이지만 특별하게 허가를 얻어 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문화재관람 Tip!!

현재 국보(청곡사영산회괘불탱)를 보기 위해서는 대략 10명 내외의 인원으로 미리 청곡사로 전화해 예약을 해야 한다. 물론 관리상의 문제다. 또한 플래시를 사용해 사진을 찍으면 문화재가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사진촬영이 제한되어 있다. 청곡사의 국보를 직접 보고 싶다면 버스 261번 또는 262번을 타고 신기마을에서 내려, 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청곡사까지 도착할 수 있다.





 
 청곡사, 이성계 그리고 갈전리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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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1380년경 남해에 노략질하러 출몰하는 왜구들을 소탕한 이성계 장군이 청곡사에 참배하러 왔다가 마을 입구 우물가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고 자신도 목을 축이려 했는데 그때 물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워서 이성계장군에게 건네준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으니 청곡사 아랫마을에 사는 진양 강씨 부인이니 훗날 조선 태조의 둘째왕비인 신덕왕후였다.


당시 청곡사 마을 이름이 "갈마정"으로 목마를갈(), 말마(), 우물정()이었으니 지명에 나타나듯 전설을 얘기해 준다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 "갈전"으로 변했다신덕왕후는 그 후 고향마을의 청곡사를 대대적으로 불사하고 조선왕실의 비보사찰이자 원찰로 삼았으며 조선왕조 대대로 이어져 왔다.


태조 이성계와 왕비는 죽어서도 서로의 곁에 묻히기를 원했지만태조 이방원이 왕위를 받으면서 운명은 그 둘을 갈라놓아 신덕왕후는 정릉(서울 성북구 소재)에 태조는 건원릉(경기 구리시 소재)에 모셔져 지금까지 서로 그리워하고 있다.

  


 


 

? 진주에 국보가 또 있었다고!

촉석루 국보로 다시 돌아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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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동쪽 남강 바위 절벽 위, 우뚝 솟은 촉석루는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년에 창건해 여덟 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오래 전 촉석루는 진주성을 지키는 본부로 사용되기도 하고, 향시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사용되었고 선비에게는 풍류를 즐기는 장소였다.

보통의 사적과는 다르게 촉석루는 출입이 개방되어 있어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과 함께했다. 촉석루는 1948년에 국보 제 276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비행기 폭격으로 불에 타 소실되며 그 모습을 잃게 되었고. 1956년 국보에서 해제되었다. 소실된 촉석루는 1959년 국비로 재건을 시작했으며, 전국 최고의 문화재 장인 기술자들이 참여해 소실된지 10년만에 재탄생하였다. 촉석루는 1960년 재건 당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원형이 소실되어 재건되었다는 이유로 예전의 국보가 아닌 지방문화재 자료 8로 지정됐다. ‘문화재 자료란 시·도지사가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 중 향토문화보존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시·도 조례에 의하여 지정한 문화재를 말한다. 모두가 국보라고 알고 있었던 촉석루는 그저 문화재 자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진주의 자랑인 촉석루가 다시 국보의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884년 화재와 1957년 폭우로 쓰러져 중건된 밀양 영남루는 촉석루와 달리 보물을 유지하고 있고 2008년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 역시 국보 1호를 유지하고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또한 촉석루가 재건축이 아니라 보수, 복원되었다는 정부기록문서와 그것을 뒷받침할 설계도 일부가 발견됨에 따라 현재의 촉석루가 원형대로 복원되었다는 근거를 갖게 된 것이다.

 

 

진주에 국보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진짜 문화예술의 도시 진주를 만들 수 있다. ‘진주역사투어를 따라 역사여행길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취재/ 한현지(경해여고2), 유지현(진주제일여고2)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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